[탈국가화와 탈권력화의 비대칭성]

economics / 2026-04-25

현대의 ‘국가’란 정부등의 중앙화된 기관 혹은 단체가 행정, 입법, 사법이라는 권력적수단을 동원하여 시장 및 민중에 강제력을 행사하는, 다시말해 불투명한 손을통해 시장에 개입하는 중앙화된 권력 장치다. 현대의 ‘국가’는 명목상 스스로를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공선, 인민의 합의와같은 정치적 이념, 그리고 사회계약론이라는 기반위에 당위성을 확립하고자 하고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세계 각국의 힘의 불균형과 이해관계의 차이에 의해 전쟁을 수반한 폭력을 통해 강제적으로 세워졌으며, 그 폭력에 법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세대가 지날수록 이러한 최초의 강제성은 교육과 관습 속에서 자연화된다.

만민을 위할 터인 국가가 사실은 더욱 큰 집단이 만들어낸 종교적, 체제적 도덕위에서 비도덕적 변수를 차단하기위한, 힘에의해 쓰여진 일종의 감옥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는 왕을 폐위한 것이 아니라, 왕의 자리를 ‘체제’라는 비인격적 군주로 대체했을 뿐이다. 과거의 왕은 얼굴을 가졌기에 증오와 반항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체제는 얼굴이 존재하지 않는다. 책임은 절차로 분산되고, 명령은 행정으로 번역되며, 폭력은 법률 속에서 희석된다. 우리는 더이상 지배자를 관측할 수 없게됨으로써 복종을 망각하고 반항의 의지를 상실한다. 기술의 발달과 분업화로 인한 각 영역의 포괄적인 불가시성은 심화되어 갈 뿐이며, 이는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감추고 구조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기회비용(공적인것과 공적인것을 위해 일하는 인간)의 막대함을 숨겨버린다.

무정부 자본주의는 기존의 국가권위주의에 대한 급진적 반론이다. 그것은 국가가 독점하던 치안, 법, 계약, 통화, 중재, 제재등 ‘문명적인 것’ 의 기능과 이를 수장하는 모든 행위의 상징적 주체를 자유시장에 넘기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즉, 정부의 해체와 그 권력, 권위를 시장에 넘기도록 ‘회유’하는 것이다. 이는 시장의 회복탄력성의 탁월함과 분업화로 인해 특징화된 공급과 수요의 일치를 전제로 작동하며, 단순한 정부 해체가 아닌, 단일한 강제규범을 복수의 경쟁가능한 규약으로 분해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문명적인 것’의 주체를 경쟁가능한 것에 한정하고 표준을 분산시킴으로써  ‘문명적인 것’ 들이 ‘다양한 곳’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구상이 20세기 이전에 일어났다면 모두가 공상에 불과하다며 코웃음을 쳤을것이다. 정보의 불균형과 낮은 반응성이 대중을 이른바 ‘멍청하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개인은 고립되어 있었으며, 거대한 조직을 대체할 분산적 조정 능력도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는 인터넷, 암호학, 블록체인, 분산 네트워크 등의 탈중앙화 기술을 통해 정보의 독점구조를 약화시키고 접근성을 비약시킴으로써 이전보다는 덜 멍청하게 되었다! 이는 중앙 권위가 부재하더라도 신뢰와 계약이 붕괴되지 않는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마침내, 탈중앙화가 가능성의 꼬리를 흔들어 내보이게되었다! 인간은 마침내 국가 밖의 질서를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탈국가화는 곧 탈권력화가 아니다.

무정부자본주의의 장점또한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석된다. 국가에서 탈피한 권력은 새로운 그릇을 찾을 것이다. 시장, 플랫폼, 자본연합, 커뮤니티 등 많은 자본과 물리력을 가진 단체는 역설적이게도 기준의 강제성을 자아내고 결국에는 들이밀게된다. 이때 시장 내의 강제적 개입이 배격된이상 오히려 폭력은 다수에 의한 긍정적 합의라는 명목하에 과정이 당위성을 지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이는 오히려 국가보다 더 빠르고, 은밀하며, 더 책임을 회피하기 쉬운 방식으로 인간을 규율할 수 있다.

무정부 자본주의의 약점은 여기에 있다. 그것은 국가의 권위적인 강제성을 날카롭게 포착해 분해하지만, 시장 내부에서 재생산되는 강제성에는 충분히 엄격하지 않다. 거대 자본은 시장 안에서도 이러한 사실상의 표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행정, 입법, 사법을 통해 특정 표준을 사회의 절대적 기준으로 타락시키며, 선택 가능한 것에서 위반해서는 안 되는 도덕적 금기로 치부한다는 점에서 선악과와도 같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후세이다. 이러한 폭풍이 지나간 후에 태어나게될 후세들은 어떠한가? 새로운 가치와 도덕, 이념이 분출되어 새롭고 다양한 사회를 형성한 시점에서 벗어나 그 체계가 고착화된 상황을 가정해보라. 결국에는 재 중앙화된 집단속에서 모든것의 잣대를 편향적으로 학습하게 되며 ‘무정부 자본주의’가 제시하고자 하는 선택의 자유를 수동적으로 배반하게 된다. 결국 탈중앙화된 사회는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 불합리함이 배증된 재중앙화에 지나치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상식의 감옥에 갇히는 것은 과연 자유라고 부르기에 합당한가?

따라서 문제는 “국가냐 시장이냐”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어떤 권력도 임계점을 넘어 자신을 영구화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가”이다. 우리 무정부주의자들이 반국가적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면 탈중앙화 내부에도 역설적인 강제성을 가미하여 자유경쟁을 가능케함과 동시에 재중앙화를 억제하는 강제적 규칙을 설계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선택지는 둘 뿐이다. 국가의 그림자에 기생하거나, 국가와 손을 맞잡고 부분적으로 협력하면서 그 권력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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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 2026-06-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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